'복(福)'에 대하여 깊고싶은 默想


복은 물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구할 때도 그렇게 알고 그렇게만 때쓰며 구하고 싶다. 인간의 경제적 풍요와 권력과 명예로 ..

그런데 신기하게 가만있지 못하고 무언가 진리를 향해 스멀스멀 나아간다.

때론 그 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 심한 갈증을 느끼기도 하고 외로워 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윤동주 시인의 팔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팔복(八福)

윤동주(1917~1945)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그러나 "복"의 의미를 마태복음 5장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10


성경에서 복을 받았다는 증거는

심령이 가난하거나, 애통할 줄 알거나, 온유하거나, 의에 주리고 목마르거나,

세상을 향해 한없이 긍휼해 지거나, 마음이 깨끗하거나, 화평을 지킬 줄 알거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느하나 정신과 육체가 복받았다고 느낄만큼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

반드시 있다는 거겠지. 혹은 인간 추구해야 할 복이란 부와 명예, 권력이 아닌 이런 것이라는 거겠지.


이 구절들을 조금 이해한다면 윤동주의 시도 이해가 된다.

슬퍼하고 슬퍼하고 또 슬퍼하면서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상황에 대해 탐구하여 촌철살인의 답을 찾아

맞서거나, 도전하거나, 끌어안거나, 어쨌든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래서 영원히 슬플 것이고 슬픈게 복이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복은 결과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결핍"을 깨닫은 그 것이 복이라는 것이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가만히 보면 세상의 섭리가 그렇다.

작게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몸과 마음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것... 등등등

결핍을 알아야 다음 계단을 오르고 어느 영역에서든 "성장"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스스로의 자유함을 위해 그렇게 찾아 헤메는 "진리"를 찾는 길일지도 모른다.

이 것은 한 번에 주어지는 명예, 부와 권력 그 이상의 복인 것이다.

팔복에서 쓰이는 단어는 사람의 단어 그 이상의 반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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